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이 페이스북에서 “검사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이 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 부여하고 있으니 검사의 수사권 완전 박탈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형사사법체계 재설계라는 역사적 진보를 멈춰 세우려는 시도다.
우리는 무소불위의 검찰청에게 기본권을 유린당해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검찰청이 있었기에 김학의가 있었고, 우병우가 있었고, 윤석열이 있었다. 김학의는 성접대 의혹에도 검찰의 늑장 수사로 면죄부를 받았다. 우병우의 국정농단 때에도 검찰은 처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자리를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가 결국 계엄으로 나라를 흔들었다.
한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독점하는 구조를 이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독일도, 프랑스도, 일본도 검찰의 수사 관여는 있지만 그 방식과 강도는 한국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한국 검찰의 이 독점 구조는 일제강점기 형사사법 체계의 잔재로,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구조적 병폐로 지적돼왔다.
‘보완수사권’이라는 유령
검찰청을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이 독점 구조를 깨는 역사적 진전이다. 기소는 공소청이,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기소와 수사를 한 기관이 독점하지 않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전을 가로막는 이름이 있다. ‘보완수사권’이라는 유령이다.
보완수사권은 왜 유령인가. 이름은 ‘보완’이지만 실제로는 기소권을 가진 기관이 수사에 다시 개입하는 통로다. 이 통로가 열려있으면 결국 공소청은 형식적으로 기소만 하는 곳이 아니라, 경찰 수사를 재수사하고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실질적 수사기관이 된다. 그 순간, 우리가 검찰청 시대에 겪었던 그 독점 구조가 이름만 바꿔 되살아난다.
장윤기 사건이 주는 진짜 교훈
장윤기 사건은 명백한 경찰의 실책이다. 부친인 경찰 간부가 증거를 인멸했고, 수사팀은 유착 정황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그러니 검찰이 다시 수사해야 한다”가 아니다.
진짜 교훈은 “경찰 내부 통제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이며, “경찰 수사에 대한 외부 감시 장치를 어떻게 정교화할 것인가”이다. 답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소청의 실효적 감시, 경찰 내부 감찰의 독립성 강화, 외부 감사 기구 도입, 시민 참여형 수사 심의 등. 왜 이 여러 가능성이 ‘보완수사권 존치’ 하나로 수렴돼야 하는가.
“경찰이 문제니까 검찰이 감시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검찰이 문제면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역사는 이미 답했다. 검찰이 폭주할 때 아무도 이를 감시하지 못했다. 아무도 막지 못했다. 그래서 김학의가 있었고, 우병우가 있었고, 윤석열이 있었다.
이석연 위원장의 헌법 논리, 무엇이 문제인가
이석연 위원장의 헌법 논리에도 반박이 필요하다. 헌법이 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 부여한다는 조항은 검찰의 수사권 독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다. 그 조항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영장 청구 주체를 법률가로 한정한 것이지, “검사가 수사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개헌 없이도 검사의 영장 청구권과 수사권은 분리 가능하다는 것이 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검찰이 아니라 공소청이 영장을 청구해도 헌법 정신은 훼손되지 않는다.
“제도 그 자체는 선악이 없다”는 이 위원장의 말은 정확하다. 그러나 그 다음 문장이 필요하다. 선악이 없는 제도일지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부패의 유혹에 빠진다면 제도 또한 부패한다. 수사와 기소를 한 개의 기관이 독점하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 제도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어떻게 정치를 왜곡하는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지난 수십 년간 목격했다.
헌법의 문구가 아니라 정신을 지켜야 한다
보완수사권이라는 유령을 걷어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의 정신을 지키는 길이다. 헌법 조문 하나를 방패로 삼아 개혁을 되돌리는 것은 헌법의 문구를 지키기 위해 헌법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다.
역사의 진전은 늘 저항을 만난다. 저항하는 이름은 항상 그럴듯하다. 이번엔 ‘보완수사권’이라는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