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탕감’은 재기의 기회? 도덕적 해이?

채무 탕감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전향적 탕감 정책을 주문했다. 여기에 더해 도덕적 해이 우려를 “무책임한 선동”으로 직접 규정했다. 말은 강했다. 그런데 그 강한 말만큼, 따져봐야 할 것들도 많다.


“선동”이라는 말이 논쟁을 닫는다

이 대통령의 논리는 이렇다. 몇천만 원 빚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도 못 하고 계좌도 못 만드는 삶을 누가 선택하겠냐는 것. 빚을 지고도 갚을 능력이 없다면 파산·면책 후 재출발시키는 게 사회 전체에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부분적으로는.

하지만 “도덕적 해이론은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표현은 다르다. 반론 자체를 선동으로 규정해버리면, 정책 논쟁이 사라진다. 탕감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누가 대상인지, 재원은 어디서 오는지 — 이 질문들이 전부 “선동”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은행 이자에 리스크 비용이 포함됐다면, 그게 탕감의 근거인가

이 대통령은 은행이 이미 일부 채무자의 부실을 감안해 이자를 책정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니 원리금을 가혹하게 받아가면 “부당 이득”이라는 논리다.

이건 논리의 비약이다. 은행이 리스크 프리미엄을 이자에 반영하는 건 대출 시스템의 기본 구조다. 그 비용은 결국 전체 대출 이용자들이 나눠 부담한다. 즉,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들이 이미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탕감이 늘어날수록 그 부담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이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세금은 “인력 동원해서 받는다”는 대통령

흥미로운 대비가 같은 날 나왔다. 130조 원에 달하는 체납 국세에 대해선 이 대통령의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인력을 동원해 독촉하면 낸다”, “세금 떼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체납관리단 1만 명도 모자라면 더 늘리라고 했다.

빚은 탕감, 세금은 철저 징수. 이 두 방향이 공존하는 논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채무자는 구제하되 납세자는 끝까지 추적한다. 어느 쪽이 더 힘이 없는 사람들인가를 생각해보면, 이 대비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탕감은 진짜 약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포퓰리즘의 언어인가

채무 탕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극단적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건 복지국가의 당연한 기능이다. 한국의 개인회생·파산 제도가 선진국 대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오래됐다.

문제는 “기준”“범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 어디에도 탕감 대상의 구체적 요건이 없다. 얼마나, 어떤 사람에게, 어떤 절차로 — 이게 빠진 채 “도덕적 해이론은 선동”이라는 말만 남는다면, 이건 정책 선언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다.

성실하게 이자 갚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금 이 발언을 어떻게 듣고 있을까. “당신은 호구였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억울함이 “선동”이라면, 대한민국 납세자와 성실 채무자 수백만 명이 선동꾼이 된다.

탕감이 필요한 건 맞다. 그런데 지금 이 방식이 진짜 약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많은 표를 겨냥한 것인지 — 당신은 어느 쪽으로 읽히는가.

📰 기사 원문 보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