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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정당했다

헌법재판소 앞. 수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목적은 하나였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항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선 것이다.

처음엔 분명히 순수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 그리고 국민 주권이 흔들린다는 위기감. 그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느낄 때 거리로 나오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된 행동이다.

그런데 지금, 그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무너지는 ‘선 넘지 않기’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일부 참가자들의 행동이 도를 넘기 시작했다. 경찰 차벽 앞에서의 물리적 충돌. 공공기관 인근에서의 무단 점거. 통행을 막는 도로 봉쇄. 이건 더 이상 ‘시위’가 아니다.

합법적인 집회와 불법적인 행동 사이의 경계선은 생각보다 얇다. 감정이 격해지고, 군중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선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딱 그렇다. ‘정당한 분노’‘불법 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더 문제인 건 이런 행동이 오히려 시위 본래의 메시지를 희석시킨다는 점이다. 언론과 여론의 시선이 ‘왜 모였는가’가 아니라 ‘무슨 짓을 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시위의 순수성, 지킬 수 있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시민운동은 ‘비폭력 원칙’을 지켰을 때 더 강력했다. 마틴 루서 킹의 행진도,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도 그 힘은 숫자와 평화로움에서 나왔다. 폭력이 개입되는 순간, 운동의 정당성은 반으로 줄어든다.

지금 헌재 앞 집회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탄핵 심판이라는 역사적 국면에서, 국민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시기에 불법 행위로 얼룩진 시위는 지지 세력의 명분을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에 가깝다.

주최 측도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거대해진 집회를 완전히 통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부의 일탈이 전체의 이미지를 덮어버리는 건 순간이다.

우리가 봐야 할 진짜 질문

이 사태의 본질은 간단하다. ‘무엇을 위해 모였는가’를 잊지 않아야 한다. 참정권 수호, 민주주의 회복. 이 가치들은 불법 행동과 절대 공존할 수 없다.

광장의 열기는 뜨겁다. 그 열기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불꽃이 될지, 아니면 스스로를 태우는 불씨가 될지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당한 분노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고, 집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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