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 사태가 터졌을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꺼낸 카드는 딱 하나였다. “표현의 자유”.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은 “5·18이 성역이 됐다”고 했고, 국민의힘 이지애 미디어대변인은 이 사태를 “스타벅스 가자”는 말처럼 가볍게 취급했다. 공직자와 정치인이 앞장서서 혐오의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무엇을 덮으려 했나
이병태 부위원장의 논리는 단순하다. 다수가 동의하지 않아도 처벌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빠뜨린 게 있다.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헌법재판소도 소수자 집단의 존엄을 훼손하는 발언은 제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헌법의 절반만 읽었다.
이지애 대변인의 비유는 더 황당하다. “스타벅스 가자”와 5·18 피해자 집단을 직접 겨냥한 조롱 구호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 대상이 없는 말과 특정 피해자가 실존하는 혐오 발언을 동일시하는 건 논리의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희석이다.
공직자의 말이 혐오를 키운다
이 사태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재고 논란이 불거진 직후, 광주일고를 향한 폭발물 협박이 실제로 발생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말이 폭력으로 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며칠이 채 되지 않았다. 공직자가 혐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로 감싸줄 때, 누군가는 그 말을 허가증으로 읽는다.
유럽 스포츠계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인종차별 구호가 확인되는 순간 출전 금지, 벌금, 영구 출입 금지가 작동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청소년 선수의 혐오 발언에도 자격 박탈이 내려진다. 반면 한국에서는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SNS에서 혐오 발언 옹호 글을 올리고, 여당 대변인이 방송에서 그 논리를 거든다. 제도의 문제이기 전에 인식의 문제다.
논의의 방향을 빼앗긴 사회
진짜 질문은 이거다. 왜 혐오표현이 나쁜가. 어떤 위험을 만들어내는가.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가. 이 질문들은 지금 정치권에 의해 철저히 묻혔다.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 판을 바꾸면,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된다. 혐오를 조장한 쪽이 오히려 “처벌받는다”고 호소하는 구조. 이 역전이 바로 혐오 정치의 핵심 기술이다.
학교는 다양한 학생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스포츠 경기장은 전파력이 극대화되는 공론장이다. 그 안에서 특정 집단을 조롱하는 구호가 울려 퍼질 때, 침묵하거나 “자유”로 포장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건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어떤 사회를 물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