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털려도 다시 쿠팡, 소비자는 정말 무력한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반년 만에 사실상 없었던 일이 됐다. 지난 6월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3,509만 명. 유출 사태 직후보다 67만 명이 더 늘었다. 결제액도 4조 8천억 원대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언론은 이걸 ‘회복력’이라 부른다. 하지만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 ‘소비자의 항복’이다.


‘탈팡’은 해프닝이었나 — 숫자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유출 사태 직후 ‘탈팡’ 선언이 쏟아졌다. SNS는 들끓었고, 회원 탈퇴 방법을 묻는 검색량이 치솟았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용자 수가 오히려 늘었다.

이 숫자가 드러내는 건 쿠팡의 저력이 아니다. 대안 부재다. G마켓은 같은 기간 결제액이 33.7% 쪼그라들었다. 11번가는 유출 사태 이전보다 22.4% 낮다. 쿠팡에서 등을 돌린 소비자들이 갈 곳이 없었다는 뜻이다. 경쟁자들은 반사이익은커녕 자기 파이도 지키지 못했다.

소비자는 쿠팡을 용서한 게 아니다. 그냥 선택지가 없었다.


배송 인프라가 책임을 면죄한다 — 이게 정상인가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새벽배송을 포기하기 어렵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발언이 무심코 인정하는 게 있다. 편의가 개인정보 침해를 덮는다는 구조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수백만 건 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음에도 피해 규모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피해자 구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다음 날 새벽 상자를 받으면서 그 논란을 일상 아래 묻었다.

로켓배송은 편리한 서비스가 아니다. 지금은 소비자의 탈출 불능 구조다. 배송망에 중독된 소비자는 정보가 털려도 떠나지 못한다. 기업은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배송 인프라에 계속 투자한다. 책임보다 락인(lock-in)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시장 독점이 만든 민주주의의 실패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갑을 닫아라. 시장이 알아서 기업을 심판한다. 이번 사태는 그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지 증명했다.

쿠팡의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배송망, 멤버십, 상품 구색에서 대등한 경쟁자가 없다. 소비자가 항의할 수단은 ‘탈퇴’뿐인데, 탈퇴의 비용이 너무 크다. 다음 날 새벽 배송이 사라지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건 소비자의 나약함이 아니다. 독점이 만들어낸 구조적 무력함이다. 기업이 정보를 유출해도 이용자가 늘어나는 시장은,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다. 그리고 경쟁이 없는 곳에서 기업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는 건 순진한 일이다.


당신의 데이터는 편의의 대가인가

쿠팡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주가는 회복됐고, 이용자는 늘었고, 결제액은 사상 최고다. 피해 소비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은 논의조차 흐릿하다.

이 구조가 앞으로 어떤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정보를 유출해도 6개월이면 회복된다. 플랫폼이 충분히 크면, 소비자는 돌아온다.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보안에 막대한 비용을 쏟을 유인이 있을까.

당신이 오늘도 쿠팡 앱을 열었다면, 스스로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나는 편의 때문에 돌아온 건가, 아니면 돌아오는 것 말고 선택지가 없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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