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심의회’가 검찰 기소 권한을 시민에게 넘긴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의 기소·불기소 결정을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심의하고, 그 결과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검찰 권력 견제’다. 하지만 실제 작동 방식을 뜯어보면, 이건 견제가 아니라 책임 회피 구조의 제도화다.
정치인 피의자에게 열린 ‘탈출구’
가천대 이근우 교수가 정확히 짚었다. 피의자가 정치인일 경우, 자신의 지역구에서 구성된 공소심의회로 사건을 끌고 갈 수 있다. 지역 민심, 팬덤, 조직력.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기소 자체를 막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민 참여’라는 포장지 안에 정치적 방탄 장치가 내장된 셈이다.
이게 이론적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수심위가 이미 증명한 실패
2024년, 수사심의위원회는 김건희 명품백 수수 사건에 불기소를 권고했다. 검찰은 그 권고를 따랐다. 결과는? 이후 특검이 기소했고,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비전문가 시민 심의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사례다.
수심위는 권고 기구였다. 강제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따랐고, 결과는 틀렸다. 그 실패한 모델에 이제 강제력까지 얹겠다는 게 공소심의회의 설계다. 문제를 고친 게 아니라, 문제를 더 단단하게 굳혔다.
‘시민 참여’라는 명분이 책임을 지운다
공소심의회가 불기소를 결정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검사는 “위원회 결정”이라고 한다. 위원회는 “우리는 자문 역할”이라고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완성된다. ‘시민 참여’라는 명분이 실제로는 책임 소재를 증발시키는 연막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기소권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국가 권한이다. 그것을 검증되지 않은 시민 패널에게 넘기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결정은 분산시키고, 책임은 사라지게 만드는 시스템 설계다. 가장 위험한 권력 남용은 ‘나쁜 의도’가 아니라 이런 식의 ‘구조적 무책임’에서 나온다.
당신에게 묻는다
수심위의 실패를 확인하고도, 더 강한 버전의 같은 제도를 만든다. 이걸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특정 피의자를 기소로부터 구조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시민 참여라는 언어로 포장한 것인가.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가.
